매년 3월, 6월,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유엔 인권이사회 정기회기가 열린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47개의 이사국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비 이사국들도 옵저버로 참여할 수 있는 명실상부 국제인권의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또한 인권이사회는 46개의 주제별 특별절차와 14개의 국가별 특별절차 담당관 등 각 분야 인권 전문가들의 보고서 발표를 통하여 국제인권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매년 3월에 개최되는 이번 인권이사회는 당해 연도 첫 회의로, 유엔에서 한 해 동안 집중할 인권 이슈를 발표하는 고위급 회기가 열리기도 한다. 이번 국제인권동향은 지난 2월 26일부터 4월 5일까지 개최된 제55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발표된 주요한 국제인권 이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2024년 각국 정부의 인권 약속
제55차 유엔 인권이사회는 100여 개의 각국 정부, 유엔 사무총장, 유엔 인권최고대표 등이 국내외 인권 문제와 각국의 인권 우선순위에 대해 발표하는 고위급 회기로 시작했다. 이번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평화’와 ‘기후’였다. 각국 대표들은 공통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 기후변화, 글로벌 불평등 심화에 주의를 촉구했다. 유엔 사무총장은 현재 진행 중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무력 분쟁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 금지, 인도주의적 휴전 및 모든 인질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석방을 촉구했다.
또한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팬데믹 예방과 사이버 범죄, 환경 오염, 인공지능 규제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인권이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특히 수많은 국가가 선거를 앞둔 올해에는 이분법적 시각을 극복하고 인간 생명의 동등한 가치라는 인권의 기준을 바탕으로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고위급 회기에서 ODA(Offical development assistance, 정부개발원조) 확대를 약속했으며 국제사회의 디지털 격차 해소, 여성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2022년 인권이사회 선거에서 안타깝게 탈락한 한국 정부는 2025년, 다시 한번 이사국 자리에 도전할 예정이다.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 앞서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어떠한 인권 공약을 내걸지도 향후 주목해 보아야 한다.
다양한 인권 모범사례 소개
이번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는 참고할 만한 각국의 인권 모범사례도 소개되었다. 고문방지특별보고관은 ‘교도소 관리의 현안과 모범사례’라는 보고서를 통해 교도소 직원 복지의 중요성,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과 교도소 관리,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로부터의 수감자 보호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국가의 모범사례들을 발표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지원 체계의 모범사례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장애인들이 '복지'가 아닌 ‘권리’의 주체로서 일상생활을 함께 누리기 위한 모범사례로 장애인 보조 기술에의 접근성 향상, 세금 면제 등 재정적 부담 완화, 필요한 인적 서비스의 무료 지원, 대중교통에의 접근성 향상, 장애인용 주택 비율 의무 정책 도입, 그리고 탈시설화와 같은 다양한 국가의 사례를 국제 기준과 함께 소개했다. 이중 주목할 만한 보고서는 집회결사 특별보고관의 보고서로 크레망 불 특별보고관은 ‘평화적 시위의 맥락에서 인권 증진과 보호를 위한 법집행 공무원 대상 모범의정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법 집행 공무원을 위한 체크리스트, 집회시위 상황에서 인권을 준수하는 디지털 기술 사용을 위한 가이드라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24년 말까지 추가적인 내용을 보완하여 핸드북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평화로운 집회시위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도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이 참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데, 이 핸드북에 나와있는 체크리스트를 들고 집회 현장에서 우리의 집회결사의 자유 현황을 점검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새로 임명된 유엔 인권전문가들
이번 인권이사회에서는 총 14명의 특별절차 담당관이 신규로 임명되었다. 특별절차 담당관들은 보통 3년 정도의 임기를 수행하며 인권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맡은 주제나 국가에 대한 조사결과 및 보고서를 발표한다.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자리는 기후변화 특별보고관으로 이탈리아 출신의 엘리사 모르게라 씨가 임명되었다. 특히 이번에는 작년 9월 신설된 ‘농민과 농촌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실무그룹’의 각 지역별 대표를 선출했으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로는 인도 출신의 샤말리 구탈 씨가 임명되었다. 새로 임명된 특별절차 담당관들이 긴밀하게 활동하며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해 힘써주기를 기대해 본다.
아침에 눈을 뜨니 또 무력 분쟁이 일어났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이다. 매일 들려오는 지구촌 분쟁 소식에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긴장감이 가득한 국제 정치 속에서 과연 인권이 설 자리가 있나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인권이사회에서 각국 정부들은 현재의 위기감에 대해 공감했고,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보자고 약속했다. 국경을 넘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연대하는 마음이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