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식 지원은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지켜내야 할 복지 안전망이다. 푸드뱅크는 그 최전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단지 배고픔을 면하게 하는 것과, 영양 상태를 고려하여 내 식탁을 자유롭게 꾸릴 수 있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취약계층의 식생활과 관련된 현재의 복지 구조가 과연 ‘권리’의 수준에 도달해 있는지, 냉정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취약계층의 식탁과 푸드뱅크
푸드뱅크는 대량 생산과 소비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잉여 식품을 필요한 이들에게 연결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기업과 개인에게서, 또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잉여 식품과 생활용품을 기부받아, 이를 취약계층과 사회복지시설에 전달하는 구조다.
우리나라에서 푸드뱅크는 처음부터 복지 체계의 한 축으로 설계되었다기보다, 음식물 폐기 문제를 줄이기 위한 환경적 접근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결식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면서 그 성격은 점차 복지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민간단체 중심의 운영은 결식 위기 가구를 지원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을 수행해 왔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전국 단위 네트워크를 갖춘 대표적인 민관 협력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 시스템은 폐기될 식품을 줄이고, 동시에 결식 위기에 놓인 이들의 식탁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자원의 낭비를 줄이면서 긴급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구조는 분명 효율적이다. 코로나19와 고물가 상황을 거치며 그 필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위기 속에서 식품 지원은 곧 생계 안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구조적 특성에서 나타나는 허점도 분명하다. 기부 물품은 대체로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장기 보관이 가능한 가공식품 위주로 구성된다. 신선식품, 특히 단백질 식품이나 청과물은 상대적으로 공급이 불안정하다. 그 결과 지원이 지속되더라도 영양의 균형이 충분히 고려되기 어려운 한계가 발생한다. 푸드뱅크는 결식 지원 복지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해왔지만, 동시에 잉여의 재분배라는 출발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지점에서 ‘남는 것’을 나누는 것만으로 구조가 완벽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발생한다.
끼니를 선택할 권리가 없는 사람들
오늘날 푸드뱅크는 취약계층의 결식 문제를 완화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식료품뿐 아니라 기저귀, 휴지 등 필수 생활용품까지 지원 범위를 확대하며 생활 전반을 보완하고 있다. 후원 물품의 수집과 보관, 운송, 관리, 그리고 직접 전달까지 담당하는 체계는 이미 복지 현장에 없어서는 안 될 기반이 되었다. 푸드뱅크가 현장의 부담을 덜어왔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인권의 관점에서 보자면 또 다른 질문이 제기된다. 지원받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어디까지냐는 것이다. 어떤 식품이 제공될지는 대체로 공급자의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 이용자는 그 안에서 제한된 선택을 하거나, 때로는 선택 없이 수령한다. 일반 소비자가 품질과 기호, 건강을 고려해 식품을 고르는 것과는 다른 조건이다. 빈곤층은 음식의 품질과 상관없이 먹을 수만 있다면 괜찮은 것인지, 생계를 위한 ‘최소 기준’이 이들의 ‘표준 기준’으로 굳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생존을 보장하는 것과 동등한 기준을 보장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한 끼를 채우는 일과, 한 끼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분명히 구분된다.
식품은 단순한 물자가 아니다. 건강과 직결되고, 문화와 연결되며, 존엄과도 맞닿아 있다. 무엇을 먹는가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식품 지원을 논할 때 단지 결식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굶지 않게 하는 것’과 ‘존엄한 식생활을 보장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잉여의 재분배에서 권리의 설계로
푸드뱅크의 공급은 기부 물품의 규모에 직접적으로 좌우된다. 기부가 늘면 지원도 늘지만, 줄어들면 곧바로 현장의 공백이 발생한다. 경기 침체나 기업의 경영 환경 변화는 곧바로 식품 지원의 양과 질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민간의 선의와 경기 상황에 따라 변동되는 구조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권리는 예측 가능하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기부의 흐름에 따라 흔들리는 생존권은 온전한 권리라 보기 어렵다. 물론 기부는 여전히 소중한 사회적 자원이다. 공동체의 연대와 나눔은 복지 체계의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적 복지의 기본값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양적 공급량을 안정시키는 문제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와 동시에 음식을 어떤 기준을 토대로 보장할 것인지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 또한 영양의 균형, 식품의 품질, 그리고 선택권까지 포함한 질적 기준이 제도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취약계층의 먹거리를 보장하는 일은 단순한 지원 사업이 아니라 생존권의 최전선에 놓여있는 일이다. 배고픔을 면하게 하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동등한 방법과 선택의 자유를 토대로 식탁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권리이다. 잉여를 재분배하는 수준을 넘어, 먹거리 보장을 권리로 설계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글_ 국가인권위원회 편집실